대기권 너머의 우주 데이터센터와 유럽의 AI 팩토리, 국경 없는 인프라 전쟁이 시작됐다
인공지능(AI)의 진화 속도가 인프라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지상에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막대한 전력과 물을 쏟아붓는 기존 방식은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글로벌 테크 진영이 선택한 돌파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갈린다. 하나는 지구의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규제와 문화적 장벽이 높은 지역에 특화된 고효율 ‘AI 팩토리’를 지상에 고도화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우주로 옮겨간 연산 대결, 미·중의 ‘우주 데이터센터’ 경쟁
“우주에 있는 데이터센터로 AI에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기까지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우주 데이터센터 세미나에서 나온 이 발언은 우주 컴퓨팅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 영역이 아님을 방증한다. 중국의 우주항공 기업 ADA스페이스는 지난해 고성능 AI 칩을 탑재한 위성 12기를 쏘아 올려 알리바바의 대형언어모델 ‘큐원-3(Qwen-3)’를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위성이 수집한 데이터를 지상으로 보내지 않고 우주 공간에서 직접 연산하고 처리하는 ‘천감천산(天感天算)’의 막이 오른 셈이다. 이 위성들은 각각 초당 744조 번의 연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 달 전 미국의 스타트업 스타클라우드가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AI를 시범 구동했다고 발표하자, 중국 매체들은 위성 12기를 동원해 실질적인 우주 컴퓨팅 네트워크를 구축한 자신들이 기술적으로 미국을 앞섰다며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섰다. 냉전 시절의 우주 패권 경쟁이 AI 인프라라는 새로운 무대를 통해 재현되는 모양새다.
미국은 질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추격을 예고하고 있다. 스타클라우드가 위성에 탑재한 엔비디아 H100 칩 단 한 장은 초당 약 2000조 회의 연산이 가능해, 중국 위성 3대의 계산량을 가뿐히 맞먹는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에는 성능이 더욱 향상된 엔비디아 블랙웰 칩을 탑재한 위성을 추가로 쏘아 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구글이 자사 텐서 처리 장치(TPU)를 탑재한 위성을 활용하는 ‘선캐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스페이스X 역시 스타링크 V3 위성들을 데이터센터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대기권 밖은 이미 새로운 AI 각축장이 됐다.
테크 기업들이 이토록 우주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비용과 자원의 한계 때문이다. 지상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난제인 발열 문제를 영하 270도에 달하는 우주의 자연 냉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낮과 밤의 제약이 없는 태양광을 24시간 내내 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우주 데이터센터의 운영 비용이 지상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 방사선과 고에너지 입자로 인한 칩 손상을 막으려면 특수한 방호 설계가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연산 성능이 지상보다 20~30%가량 저하된다. 수리가 불가능해 고장 나면 고스란히 우주 쓰레기가 된다는 점, 그리고 자율주행이나 금융 트레이딩처럼 초단위의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한 서비스에 쓰기에는 통신 속도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상에서의 정면돌파, 유럽의 자존심을 건 프랑스의 ‘AI 팩토리’
우주가 미·중의 기술 과시적 격전지라면, 지상에서는 유럽의 맹주를 자처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또 다른 형태의 인프라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는 막연한 대기권 밖 권력 대신, 철저히 자국 언어와 문화적 맥락, 그리고 유럽의 엄격한 규제 기준에 맞춘 ‘소버린(Sovereign, 주권) AI’ 생태계를 지상에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거대한 인프라 투자를 통해 미국과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 생산 기지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AI 스타트업 미스트랄(Mistral)이 있다. 미스트랄은 프랑스 북부 브뤼에르르샤텔 지역에 44메가와트(MW) 규모의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짓고, 엔비디아의 차세대 GB200 시스템 18,000기를 도입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이를 발판 삼아 2027년까지 유럽 전역에 200메가와트 규모의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프랑스 국책투자은행(Bpifrance)과 첨단기술 투자사 MGX, 엔비디아가 손잡고 추진하는 ‘캠퍼스 AI’ 프로젝트 역시 1.4기가와트(GW) 규모의 초대형 AI 팩토리 조성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유럽 현지 공급망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유럽의 클라우드 공급업체 스케일웨이(Scaleway)는 엔비디아 블랙웰 B300-SXM 인스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뷜(Bull)과 폭스콘(Foxconn)은 유럽 현지에서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NVL72 시스템을 생산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체코 공장에서 초기 테스트를 거친 뒤 프랑스 앙제에 있는 뷜의 공장에서 최종 조립 및 검증을 마치는 구조다. 여기에 슈나이더 일렉트릭까지 가세해 기가와트급 AI 팩토리 설계 도면을 개발하며 지상 데이터센터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거대한 하드웨어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오픈소스 모델과 결합해 데이터 주권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플레아스(Pleias)나 리나고라(LINAGORA) 같은 현지 기업들은 유럽의 규제와 문화적 특성에 최적화된 개방형 모델을 쏟아내고 있다. 단일 모델을 개발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모델이 다음 모델을 학습시키고 데이터를 검증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 인프라’를 조율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리나고라가 개발한 ‘루시올(Luciole)’ 모델(1B, 8B, 23B)은 프랑스어와 현지 정서에 맞춤화된 언어모델로, 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슈퍼컴퓨터 중 하나인 ‘장 제(Jean-Zay)’에서 사전 학습을 마쳤다. 이러한 오픈소스 모델 인프라는 기업과 정부가 AI를 직접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는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럽 시장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대기권 밖 수백 킬로미터 상공에서 태양광을 받으며 초당 수천조 번의 연산을 수행하는 미·중의 위성들, 그리고 유럽의 심장부에서 자국 주권과 규제 강화를 무기로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프랑스의 AI 팩토리들. AI 패권의 향방은 이제 누가 더 뛰어난 알고리즘을 만드느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연산 장치를 어디에 두고, 어떤 에너지를 쓰며, 누구의 문화를 학습시킬 것인가라는 지극히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에 테크 고래들이 던지는 답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